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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공부/함께읽기

킴 닐슨의 『장애의 역사』

작성자: 이승영

 

함께하는연구의 2021년 8월 함께읽기에서 읽고 토론한 도서는 킴 닐슨 저자, 김승섭 번역의 『장애의 역사』 (동아시아 출판, 2020년)이다.  본 글에서는 『장애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고, 개인적인 감상평을 제시한다.  

 

 

사진출처: YES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94457850)

 

원서 제목: A Disabilit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번역 출판된 이 책의 한국어 판의 제목은 '장애의 역사'이지만, 이 책의 원제는 "A Disabilit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로, 직역하면 '미국의 장애사'다.  15세기 이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이 거주하던 시기부터 원서가 출간된 2010년 초반에 걸친 시기를 관통하며 미국에서 '장애'가 어떻게 등장하고, 어떻게 다뤄졌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 개념과 관련 정책이 발전해왔는지 잘 보여준다. 

 

저자는 본 책을 통해 북아메리카 지역의 15세기 이전 토착민 거주 시기에서 식민지 시기를 거쳐 산업화, 전쟁, 도시화를 거친 일련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장애가 어떻게 다루어져왔는지 다양한 인물과 사회상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제시한다.

 

본 리뷰에서는 전체 내용 중 토착민 거주시기인 1장에서 미국이 독립전쟁을 치르고 독립하게 되는 시기를 다룬 4장에 걸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고,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글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과 비평을 제시한다. 전체 8장의 내용 중 5장에서 8장에 걸친 내용은 장애인 복지학을 공부하였거나 사회복지 발달사를 공부한 이들이라면 접해 본 적 있는 친숙한 내용이다. 그러나 1장에서 4장에 걸친 내용은 토착민 거주시기, 미국 식민지화, 미국 독립전쟁, 노예제가 존재하던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이 초반부 내용 제시에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는 이 부분이 현대의 장애를 둘러싼 이슈들을 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 뿐만 아니라 인종, 젠더, 계층, 경제수준, 교육수준에 따라 이루어지는 차별과, 이 차별들이 장애와 교차하면서 어떻게 차별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데, 그것이 이 책만이 갖는 특별한 점이다.

 

본문 구성과 내용

 

『장애의 역사』는 역자의 변과 서문으로 포문을 연 후, 총 8개의 장에 걸쳐 장애의 역사를 제시한 후, 에필로그로 끝을 맺고 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옮긴이의 말

들어가며

1장 영혼은 자신이 머무를 몸을 선택한다: 북아메리카의 토착민들, 1942년 이전

2장 가난한, 사악한, 그리고 병약한 사람들: 식민지 공동체, 1492-1700

3장 가여운 이들이 바다로 던져졌다: 후기 식민지 시기, 1700-1776

4장 비정상인 자와 의존하는 자: 시민의 탄생, 1776-1865

5장 나는 장애가 있어서 중노동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해: 장애의 제도화, 1786-1890

6장 저능아는 삼대로 충분하다: 진보의 세기, 1890-1927

7장 우리는 양철컵을 원하는 게 아니다: 토대를 다지고 무대를 만들다, 1927-1968

8장 난 운동가인 것 같다.  운동은 마음을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권리와 부정된 권리, 1968년 이후

에필로그

주 

찾아보기

 

서문

저자는 이 책에서 '장애'라는 렌즈를 통해 미국의 역사를 검토할 것임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흔히 장애가 의존과 동일시됨으로써 장애에 대한 낙인이 발생하고, 이는 곧 '독립성, 자율성,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의 신조와도 충돌한다.  따라서, 장애를 통해 미국사를 조망함으로써 미국적 이상의 강점과 약점, 모순에 대해 숙고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p.21). 역사적 흐름 속에서 장애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일루어졌으며,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났는지 밝힘으로써 장애는 단순히 신체적 범주가 아닌, 계속해서 변화하는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적 범주임을 밝힌다(p. 23).  특히, 장애를 통해 민주적 공동체의 상호의존성을 말하고자 한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p. 21). 

 

1장

본문으로 들어가면, 1장은 1492년 이전, 북아메리카에 토착민이 거주하던 시기에서 시작한다.  토착민이 거주하던 시기에는 그 시기의 삶의 방식의 특성상 신체 일부가 훼손되는 것이 너무나도 흔한 일이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낙인이 자동적으로 따라오지는 않았다.  언어적인 부분에서는 서로 다른 토착민 부족간에 수어로 의사소통을 했을 만큼 수어는 모두가 사용하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고 한다. 따라서 농인이라 하여 배제되지도 않았고, 수어 대화가 그리 눈에 띄는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p. 43).

 

그런 토착민 사회에서도 낙인이 생겨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개인의 몸, 영혼, 정신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였다.  오늘날과 같이 단순히 인지장애가 있거나, 뇌성마비로 신체 움직임이 다르다거나, 농인이나, 팔다리가 없는 등 신체적 특징으로 인하여 장애로 분류되고 낙인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현대의 기준으로는 미신이라 할 만한 논리들이 존재하였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맹이나 오늘날 심리장애라고 부르는 상태, 수두는 금기를 어기는 것과 같은 부조화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했고, 그 치료법들 역시 개인의 조화를 회복시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p. 45). 

 

"후천적으로 얻게 된 [신체적] 장애가 너무 흔했기 때문에,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p.50).

 

는 대목은 장애가 얼마나 사회적인 환경에 따라 정의되고 상대적인 개념인지 보여준다. 

 

2장 

 

2장에서는 북아메리카에 유럽인들이 들어와 북아메리카를 식민지화 한 15세기에서 17세기를 다룬다.  유럽의 탐험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시작하면서 토착민 공동체는 외부에서 유입된 이방인들과 충돌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유럽인들은 토착민들이 사용하는 수어를 '미개한 손 신호'라고 폄하했고, 토착민이 야만스럽고 열등하다고 믿었다(p. 59). 

 

유럽에서 들어온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몸만 가져온 게 아니라 각종 전염병도 함께 들여왔다.  천연두, 홍역, 수두, 볼거리와 같은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온 마을에 퍼졌고, 높은 사망률과 치명적인 신체손상을 남기면서 토착민 공동체를 무너뜨렸다.  1장에서 제시된 토착민 시기에는 신체적 장애가 있더라도 공동체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여하기만 한다면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장애를 얻게 된 상황에서는 신체적 장애로 이동이 어려운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공동체가 이전과 같이 기능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유럽 이주민들은 한 개인이 노동할 수만 있다면 신체적 비정상성은 별 것 아닌 문제로 여겼다고 한다.  이는 곧 이 시기의 장애는 노동 능력 여부와 노동생산성의 정도로 결정되었다는 뜻이다(pp. 77-78).  

 

다만, 이 시기에도 장애에 대한 유럽인들의 태도에 예외가 있었는데, 신체가 기형이거나 장애아를 출산하는 것은 '괴물출산'이라 칭하며 신의 분노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였다는 점이다(p. 78).  이 시기에는 많은 여성들이 사산을 하거나 비정상적인 몸의 아기를 출산하였고, 오히려 가임기 여성이 그런 경험이 없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서구 유럽인들은 이를 두고 그 여성이 죄인이라는 증거, 특히 도덕적 죄악을 행한 증거로 보았다(p.83).  출산은 여성 혼자만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출산의 결과에 대해 여성을 비난하고, 이를 신의 분노이자, 죄악의 증거로 본 것을 두고 저자는 이것이 '종교적, 정치적, 젠더 위계'를 반영함을 지적한다(p.82). 

 

3장

 

3장에서는 후기 식민지 시기라 불리는 18세기 중후반 시기를 다룬다.  이 시기에는 점차 유럽계 정착민이 증가하면서 나름의 공동체 질서가 새롭게 확립되었다.  그에 따라 가족이 돌보지 않거나 돌볼 수 없는 장애인의 경우 공동체에서 함께 돌봄을 책임졌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초창기 수용시설이 발달하고 확대되었으며, 장애인을 돌보는 것이 가족이나 공동체의 역할이었던 것에서 '의사'의 역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가족이 돌보지 않거나 돌볼 수 없는 경우는 가족의 경제력이 넉넉하지 못한 경우로, 장애인 가족의 경제적 부에 따라 가족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지, 공동체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지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도움이라는 것은 당시의 빈민법의 대상이 된다는 것으로, 오늘날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수준의 돌봄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또한, 가족의 돌봄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가족들로부터 편안한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가령, 정신장애가 있는 경우, 집의 '지하실에 구속복을 입은 채로 감금되었다. 그 옆은 하인(노예)이 지키고 있었다'는 대목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p.91).  가족이 경제적 여유는 있으나, 정신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기 힘들 때에는 '집 안에 갇혀 있어도 된다면 데리고 있겠다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돈을 주고 가족을 맡기기도 했다고 한다.  당대의 정신 장애인의 삶은 현대의 기준으로 볼 때 처참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다만, 이 시기에는 정신적 장애가 있더라도 그가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부이 있다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장려되었고(책에 언급된 '오티스'라는 이는 자신이 받은 교육적 재능을 활용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정신 장애 자체가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감금이 이루어졌지만 이는 '꼭 필요한 경우'에 한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꼭 필요한 경우'도 현대의 기준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었는가는 의문이다. 당대의 사회적 환경과 여건이 그들의 감금을 '꼭 필요한' 것으로 만들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적이지만 않다면, 정신 이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p. 94).

 

이 시기에는 '구호소'가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저자에 따르면 '구호소는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는 사람들을 내버리는 곳이었고, 종종 교도소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p. 94). 

 

인종이 곧 '장애'이던 시기: 노예제의 여파

 

이 시기에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천연두가 유행하면서 많은 이들이 장애를 입게 되었는데, 동일한 장애라도 인종에 따라서 다르게 취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강제로 북아메리카로 데리고 오면서 생겨난 노예제와 연관이 있다. 처음으로 아프리카인이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것은 1619년의 일로, 19명의 아프리카인이 들어왔다.  당시에는 모두 노예가 아니라 법적으로 계약 노동자인 하인의 신분이었다. 

 

"그러나 1640년대에, 아메리카의 유럽인 거주민들은 노예제를 위한 법적인 준비를 마쳤고, 아프리카인들이 이 신세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인간이 아닌 소유물이었다"(p. 101).

 

"700년에는 2만여 명의 아프리카인이 북아메리카에서 노예로 살고 있었다. 1790년에는 그 수가 70만명에 달했고, 1860년에는 거의 400만으로 늘어났다"(p. 101).

 

미국으로의 노예 운송은 '1801년 1월부터 금지되었지만, 남북전쟁에서 1865년 북군이 승리할 때까지 노예제는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존재했다'(p.102). 

 

노예제가 장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이들은 아프리카인이라는 인종, 노예라는 신분 그 자체로 차별의 대상이었으며, 그것은 곧 그 사회에서의 장애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언급한다. 

 

"노예제의 근간을 이루는 인종차별 이념에 따르면, 북아메리카로 온 아프리카인은 그 자체로 장애인이었다.  노예 소유자들과 노예제 옹호자들은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났고 그들의 몸이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럽다고 가정했다"(p. 102). 

 

더 나아가, 

 

"실제로 노예 소유자들은 자신들이 부리는 노예가 몸과 정신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노예제가 돌봄이 필요한 노예에게 도움이 되는 친절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장애는 노예제의 이념, 경험, 실행에 있어 다양하고 심오하게 스며들었다"(p. 103).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유럽인 노예무역상들은 아프리카에 이미 존재하는 노예무역과 시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p. 103).  아프리카 현지에서의 노예와 미국에서의 차이는 아프리카에서는 신분이 세습되지 않아 노예인 어머니를 뒀더라도 자녀는 자유인이었다. 

 

노예제와 인종차별이 장애에 미친 영향은, 한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또 노골적으로 시장가치를 매기다 보니 노예의 신체적 특징, 신체 훼손 정도 등에 따라 실제 가격이 매겨졌다는 점이다.  이 전 시기에는 신체 일부가 훼손되거나 기형의 신체를 갖고 있는 것, 혹인 정신이나 인지 장애가 있는 것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그리 크지 않았으나, 각 노예에게 가격을 매기고 물건처럼 거래를 하면서 신체적 특징과 장애 하나 하나가 그 인간의 가치로 매겨진 것이다. 

 

더욱 잔인한 것은 '노예 사냥 도중에 "어린이뿐 아니라 나이 든 남성과 여성은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졌고 종종 학살당했다"는 점이다(p. 104).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고, 책으로 읽기만 해도 마음이 아려진다.  당시의 기준으로 '나이 든' 기준은 현대보다 더 이른 시기였을텐데, 우리가 아프리카 인이고, 당대에 태어났더라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이들은 학살의 대상이 되었을게다. 

 

더욱 가관인 것은 흑인들이 미국으로 운송되는 과정은 매우 비인간적이었고(음식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개인에게 배당된 물이 한잔 남짓인데다, 종종 쇠사슬에 묶인 채로 운송되었다고 한다[p. 105]), 그로 인해 질병이 더욱 빠르게 확산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다 보니 이동 과정 중에 상당수가 사망하거나 치명적인 장애를 입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심각한 신체 손상이 일어나며 몸값이 낮을 것으로 여겨지는 이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배 밖으로 내던져졌다고 한다(p. 107).  

 

"노예선이 북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눈에 띄는 신체, 정신 인지 장애를 가진 노예는 손상된 상품으로 취급받았다.  당시 그들은 '폐품 노예(Refuse Slaves)'라고 불렸다.  노예 회사 판매자들은 낮은 가격을 받는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질병과 장애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가격표에 명시했다"(p. 108). 

 

Refuse Slaves.  폐품 노예라 번역된 이 말은, 더 쉬운 말로 쓰레기 노예라는 뜻이다.  

 

4장

 

4장에서는 북아메리카인들이 영국 조지왕과 의회에 독립을 선언하고 미국 정부를 수립한 시기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 시기에 두드러진 특징은 미국 정부 수립과 맞물려 '좋은 시민'과 '나쁜 시민'을 구분하고자 하는 정치적 노력, 그것이 인종과 교차하는 한편, 장애의 원인이 국가의 목적과 기준에 맞춰 '선한 장애'인가 아닌가를 구분하고, 장애 안에서도 장애의 종류에 따라 장애인을 위계화하는 일이 일어났다.

 

먼저, 좋은 시민과 나쁜 시민이란 무엇인가?  왜 필요한 개념인가?  좋은 시민, 나쁜 시민이 장애의 역사와 무슨 상관인가?  저자 킴 닐슨에 따르면, '좋은 시민'을 규정함으로써 시민이 참여하고 만들어내는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으므로 좋은 시민, 나쁜 시민을 구분하게 된 것이라 설명한다.  이 때, 시민의 자격은 '노동능력 여부'로 구분되는 것이었다. 즉, 특정 장애로 인해 노동에 종사하기 어려운 경우 '나쁜 시민'이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1818년 제정된 미국 독립전쟁 연금법은 '실명, 다리 절단, 마차사고로 인한 손부상 등의 손상으로는 장애인이 되지 않는다고 정했다.  연금법에 따르면, 장애는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했다'(p. 121). 

 

이 시기의 특징은 미국 독립전쟁을 계기로 장애의 원인에 따라 장애인 내에서도 구분이 이루어지는 한편, 장애의 원인과 인종이 교차하면서 단순히 인종에 따른 차별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먼저, 미국의 '독립전쟁'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수행하는 중에 장애를 얻게 된 퇴역군인의 장애와 그렇지 않은 장애간에 위계가 생겼다. 이로써, 이전까지는 인종에 따라, 즉 흑인이라는 그 자체로 장애였으며, 흑인장애인은 백인장애인에 비해 더욱 차별받았던 상황에서, 전쟁에 참여한 백인/흑인 퇴역군인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장애인간에 위계가 생겼다.  즉, 흑인이더라도 독립전쟁에 참여한 바 있는 퇴역군인 흑인 장애인은 그렇지 않은 흑인장애인과 다르게 대우받은 것이다.  동시에, 인종에 관계없이 전쟁에 참여하였다는 행위는 동일한데, 단지 인종으로 차별받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장애가 있는 퇴역군인이더라도 비장애 퇴역군인과 빈곤율, 취업률이 유사했다는 사실은 장애가 반드시 노동능력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았다(p. 122).  다만, 당시에는 산업화, 도시화가 가속화되기 이전으로, 가족 경제공동체가 많은 상황에서는 장애인의 경제활동이 보다 용이했다(p. 123). 

 

전쟁과 별도로, 백인 집단 내에서도 여성의 몸과 정신은 남성과 다르게 취급되었는데, 여성의 몸과 정신을 남성에 비해 무엇인가가 결핍된 상태로 보았다고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백인이라 하더라도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노동의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권한 자체가 없었다는 점에서 백인 남성과 차별된다. '당시의 정치이론은 결핍된 몸을가진 사람들의 재산권이 박탈당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p. 125)는 대목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충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이 글의 저자인 킴 닐슨은 장애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축되고, 어떻게 다양한 집단을 차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커다란 '장애'라는 분류 안에서도 인종에 따라, 성별과 장애가 어떻게 교차하고 각 교차점에  따라 어떠한 점을 시사하였는지 끊임없이 지적한다.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교차점에 따른 함의를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차별이 존재하고 야기되었던 상황들에 대해 깊은 고민을 촉발한다. 

 

'장애의 역사'는 역사학자가 쓴 책인 만큼 수많은 역사적 사료들을 활용하여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 내용들을 바탕으로 장애의 역사를 보여준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라니!  가령, '과학적 인종주의의 사악한 믿음 중 하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그들 몸의 인종적 결함 때문에 육체적 통증과 불안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는 대목은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볼 법한 대목이지만, 그것이 바로 역사이다(p. 135).

 

최초의 장애인 교육 시설의 등장 

 

1817년, 드디어 처음으로 장애에 특화된 미국농인수용소(American Asylum for the Deaf)가 설립되었는데, 농인공동체의 변화와 발전은 1985년 국립 농아인 대학에 대한 미국 의회 인가로 이어졌다. 이후, 이 대학은 1894년 갈로뎃 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농인집단은 교육을 통해 문해율이 높아졌고, 교육률, 경제적 성공률도 크게 높아졌다(p. 142).

 

곧 이어 맹인학교도 설립되었다. 잘 알려져있는 앤 설리번, 헬렌 켈러가 다녔던 곳이 매사추세츠 보스턴의 퍼킨스맹인학교로, 이는 1829년에 설립되었다. 미국농인수용소에서 공부한 이들은 이후 전국에 비슷한 학교들을 설립해가면서 농인 교육시설이 증가했다(p. 143).

 

장애인 교육시설이 확대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지역별로 남부와 북부, 개인의 인종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의 수준이 달랐다고 하니 '장애의 역사'를 읽다보면 장애의 역사가 아닌 '모든 차별의 역사'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장애인 시설 확대 외에도 이 시기에 이루어진 중요한 발전은 1825년 이후 법원에서 광기를 더이상 신의 분노가 아닌, '질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p. 144). 이는 1782년 하버드대학에서 북아메리카 내 최초의 의과대학이 설립되고 의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과 연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은 장애를 이유로 시민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었다. 투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들에 대한 배제가 정당화되었다(p. 156).

 

5장에서 8장

 

이후에 제시되는 장애의 역사는 장애인 복지학을 공부한 이들이라면 친숙한 내용들이다. 5장에서는 산업화, 도시화가 일어나고, 남북전쟁으로 수많은 이들이 장애를 얻게 된 시기를 다루고, 6장에서는 우생학이 지지를 얻으며, '공공의 부담이 될 것 같은'  지적 장애인과 정신 장애인에 대한 강제불임이 이루어진 시기를 다룬다.  마지막 두 챕터인 7장과 8장은 최근의 장애운동의 이슈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친숙할 수 있는 탈시설화(7장)와 장벽허물기 운동 및 장애인차별금지법 입법 과정(8장)을 다룬다.  

 

감상평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에는 15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면서까지 장애의 역사를 다룰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현재의 미국이 건립되기 이전부터의 그 지난한 역사를 거치며 장애가 인종과 교차하고, 노예제에 따라 장애의 개념이 구성되고, 그것이 다시 장애에 대한 낙인을 만들고 장애인을 가치없는 인간으로 인식시키는 역사를 만들어내게 된 과정을 보게 되고, 그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장애'의 의미는 물론 인종, 젠더, 계급에 따른 차별의 역사를 배우게 된다.  특히, 장애가 여타의 차별적 요소들, 즉 인종, 젠더, 계급, 장애 종류와 원인과 끊임없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차별의 지점들을 계속해서 제시하는 것은 이 책만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차별에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가 단순히 하나의 잣대로 존재하지 않고 그것이 사회의 다른 요소들과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지점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또한 장애의 역사에 대해 여러 저자가 여러 시기과 국가를 나누어 맡아 저술한 책은 있어도 이렇게 단일저자가 한 국가의 장애사 전체를 개괄한 책은 찾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500년이 넘는 시기에 대한 장애사를 한 저자의 호흡에 따라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독자가 여러 조각의 역사를 스스로 꿰어맞추기 위한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본 책의 원문이 출판된 시기는 2012년 10월로, 한국어판 번역본은 2020년에 발간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원본 출간과 번역본 출간 간에 시간 간격이 제법 있다.  번역하시는 분은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에서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님으로, 책 초반부의 역자의 변에 따르면 김승섭 교수님께서 2019년 연구년을 미국에서 보내시다 이 책을 접하게 되셨고, 직접 번역을 맡아 진행하셨다고 한다.  제법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번역을 하신 만큼 사회과학 교양서적에서 보기 드물게 번역이 매우 매끄러워 번역서라는 것을 잊을 만큼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이다. 

 

책은 원서 제목에서 '미국'의 장애사라는 점을 내걸고 있으나 한국어 제목은 '장애의 역사'로, 이 책이 구체적으로 '미국'의 역사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이거나 혹은 전세계에 걸친 장애의 역사를 기대하고 책장을 넘긴 독자라면 왜 미국의 이야기만을 다루는지 의아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다.  본 책은 미국 고유의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지만, 미국이 겪은 식민지화, 산업화와 도시화, 전쟁, 민주주의의 심화와 같은 경험은 구체적인 시기는 다르더라도 많은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일들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이 여타의 다른 산업화된 국가들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 '미국'이라는 국가명을 포함하지 않은 것을 납득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장애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회적인 변화를 이야기하는데,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주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전환점 혹은 개인들이 일으켜내는 변화에 대해 조금은 결과론적으로 다뤄지는 것 같아서 그 변화의 흐름이 일어나게 된 동력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장애의 역사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동기를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저자가 참여하여 여러 시기나 국가별로 나누어 저술한 책들을 찾아본다면 이 책에서 발견한 지적간극을 충분히 메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원본 저자인 킴 닐슨은 현재 프랑스 톨레도 대학에서 장애학을 가르치고 계신 교수님으로, 미국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약 15년간 근무하시고 프랑스로 옮겨가셨다고 한다.  저자가 작성한 서문에 따르면, 본인은 '역사학자이고 페미니즘 연구자이자 장애학 연구자'이다(p. 33).  서문에 적혀있는 저자의 개인사는 이 책의 의 내용과 의미를 더욱 강하게 해주는데, 그것은 본 책을 쓰기로 계약하고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당시 열여섯살이던 딸이 심각한 병에 걸린 후 결국 젊은 장애여성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장애의 역사를 저술하기로 한 상황에서 자신의 딸이 장애를 얻게 되면서, 본 책을 쓰기 위해 사료를 찾고 글을 써나가는 과정은 저자에게 그저 저술 작업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밝히는 개인의 이야기는 이 책의 앞과 끝을 감동적으로 이어준다. 그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에필로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밝히지 않도록 한다.

 

이 책은 장애인들이 불합리하게 핍박받고 차별받고 살아온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장애가 젠더, 인종, 계층이라는 요소와 어떻게 교차하며 수많은 차별의 도구로 사용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저자와 번역가가 그들의 삶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담고, 또 한국어로 옮겨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읽혀지도록 해 준 것은 그 자체로 뜻깊은 장애 투쟁이고 운동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많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강력히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