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황선영
이번 달 함께하는연구 조합원들이 함께 읽은 책은 룰루 밀러(Lulu Miller) 작가가 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입니다. 이 책은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에세이들은 작가의 소소한 일화들을 통해 깨달은 삶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에세이들은 흔히들 도서관 문학서적 쪽에 통으로 분류되어 있죠.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위해 공립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놀랍게도 이 책은 에세이 쪽이 아닌 과학서적에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왜 이 책이 과학서적으로 분류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이 자전적 에세이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결국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 사회의 질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관한 패러다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이 책의 화자인 룰루 밀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버지와 데이비드 조던 스턴이라는 학자입니다. 밀러의 아버지는 밀러가 어릴 적부터 “우리 모두는 큰 우주의 질서에 비하면 먼지 같은 미물에 지나지 않으며 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는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p.55). 그에 비해 데이비드 조던 스턴은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물고기를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여기에 이름을 붙이는 연구를 해내가는 학자입니다. 그는 “자연의 사다리의 형태”라고 불리는 것들을 통해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지위가 정해져 있는지를 드러내줄 가장 높은 청사진에 대한 추적”(p.76)을 끈질기게 해나갑니다. 작가는 이러한 데이비드 조던 스턴의 과학자적인 집념이 세상을 더 이롭게 만들고 먼지 같던 자신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줄 사람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데이비드 조던 스턴이 벌린 반전과 같은 일이 드러납니다. 그 반전을 통해 작가는 아버지가 주장했던 세계와 데이비드 조던 스턴이 주장했던 세계와는 다른 제 3의 세계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데이비드 조던 스턴이 “어류”라는 이름으로 인위적인 선을 그어 묶으려 했던 질서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계층화 작업도 정답이 아니며, 모든 것들이 미물과 같은 먼지라는 것도 정답도 결국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각기 다른 고유성을 가지며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학문의 영역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탐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이 크게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으로 분류된다면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인간 군상들이 모여서 사는 사회, 정치, 행정, 제도 등을 연구하는 학문 등은 인문과 사회과학 영역에 가깝습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는 학문이 자연과학으로 분류되고요.
그렇지만 과학 분야 별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은 학자마다 다를 수가 있죠. 그건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끼고 있는 렌즈가 학자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의 영역에서는 치열하게 학자들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공고하기 위한 이론들을 만들고 그 이론을 반증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들을 하게 되죠. 그리고 그 연구들은 “과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과학적 연구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연구를 하면서 가끔 연구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놓치고 맙니다. 결국 연구는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종래 우리가 가져야 할 궁극적 정신은 인간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가치이고 그 과정은 반드시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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