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흙밥 보고서 (변진경 저, 들녁, 2018년)
작성자 | 최보라
현장에서 일하면서 만났던 청소년들이 지금은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들을 만나고 있지 못하지만 『청년 흙밥 보고서』 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바로 그들이 떠올랐다.
저자는 오랜기간 청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그들의 식사를 '흙밥=흙수저의 밥'이라고 불렀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고비용 대학 교육, 취약한 노동 환경, 길어진 취업준비 기간, 열악한 주거 여건 등으로 ‘식사권’을 빼앗겼다. (29p.) “지금 제 상황에서는 제로섬 게임에서 오는 압박감이 식사 때 저를 더 불안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 같아요. 행복하고 아무 걱정 없는 식사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저자가 만난 청년들의 '흙밥'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부실했다. 우리의 청년들은..
- 밥 한 숟가락에 굵은소금 한 개씩 넣어 먹었다
- 물에 카레 가루만 풀어서 끓여 마셨다
- 물에 다시다만 넣어 끓여 먹었다
- 아리수만 먹으며 3일을 굶었다
- 학교식당에서 500원짜리 공깃밥에 스낵코너에 비치된 단무지 몇 개를 반찬으로 먹었다
- 아르바이트 하는 편의점에서 폐기하려고 내놓은 삼각김밥 세 개를 냉동실에 열려뒀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녹이지도 않은 채 부숴 먹었다
- 일하던 한식당에서 손님이 남기고 간 육회가 꿀맛이어서 슬펐다
- (취업준비생) 방값과 면접 교통비에 쪼들려 라면 수프와 고시텔 밥으로 며칠을 견뎠다
- (대학생) 폐점시간에 대형마트에서 할인 스티커가 붙은 삼각김밥 5~6개를 사서 냉동해 두었다가 한 개씩 녹여서 점심시간에 아직 차가운 삼각김밥을 먹었다
- 학교식당에서 친구가 식사하고 비운 식판에 밥과 반찬을 리필 받아 먹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만든 청년에 대한, 청년의 식사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가혹하다.
청년들은 '새파랗게 젊은 것'이고, '돌도 씹어 먹을 나이'이니 '밥 한 끼 굶는다고 죽지 않는다'거나 '우리 때는 다 못 먹고 컸다'라고 한다. 더 이상 젊음은 특권이 아닌 '착취의 명분'이 돼 버리기도 한다. 이런 기성세대 앞에 저자는 묻는다. (24p.) "아무리 새파랗게 젊은것들이라 해도 밥은 먹어야 일을 할 거 아닙니까?"
젊고 튼튼해서 한두 끼 굶는다고 별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식사권을 포기한 청년들은 건강을 잃는다. 과일과 채소를 챙겨먹기 힘들고 균형잡힌 영양소가 부족한 식사를 한다. 알바시간, 취업준비시간에 쫓겨 아예 굶거나 편의점에 서서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 라면, 빵, 김밥 등의 저렴한 인스턴트와 가공 음식을 주로 먹는다. 또한 극심한 취업 스트레스, 불규칙한 수면, 건강을 돌아볼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는 상태로 지낸다. 청년들은 신체적 건강과 심리적 건강을 잃고 있다. (47p.) 청년은 이제 사실상 ‘건강 취약계층’이다. 극심한 취업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부실하게 먹고 불규칙하게 자면서, 병원에 가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할 시간적·심리적 여유도 잃어버렸다.
감사하게도 이런 청년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기 위해 '십시일반', '끼니(끼니를 다함께)', '희망토', '청년 도시락 사업' 등이 실시되고 있다. 여러 단체에서 작은 마음들을 모아 청년의 식사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원을 하고 있으며, 지원을 받은 청년들은 '밥 한 끼'를 제공받은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대신 공부할 '시간'과 '미래'를 제공받은 것으로 여겼다. 식비지원을 받은 한 청년은 식비지원을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줄이고, 편의점 식사 대신 백반을 먹으며 조금씩 체중이 불어났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고 얼굴 살이 붙으면서 조금씩 고개를 들고 다른 사람의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청년은 폐기음식을 먹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가장 소중한 공부 시간을 확보했다. 처음으로 사회가 주는 밥을 먹게 되면서 ‘인권이 보장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밥을 든든히 챙겨 먹고 나서 조금씩 해오던 봉사활동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 보다 나은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역사상 유례없이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되었다. 기존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온 청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내려놓고 청년들의 삶과 아픔에 공감하며 그들의 상황과 필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청년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38p.) 꼭 빚을 다 갚지 않아도, 취직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청년들은 맛있는 밥을 먹어도 된다.
'함께하는공부 > 함께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의 배신』 (1) | 2019.12.17 |
---|---|
『지식인의 책무』 (0) | 2019.08.31 |
『위장환경주의』 - ‘그린’으로 포장한 기업의 실체 (0) | 2019.06.28 |
『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0) | 2019.05.02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0) | 2019.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