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 (Nickel and Dimed, 바버라 에런라이크 저, 부키, 2012년)
작성자 | 최지현
나에게서 경력과 높은 학력을 빼고 나면 어쩌면 남는 것은 원래의 ‘바브’인지도 몰랐다. 아버지가 광산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면 ‘바브’는 실제로 월마트에서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브’가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 보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고 조금은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그녀는 실제의 나보다 심술 맞고, 교활하며, 한번 앙심을 품으면 잘 풀지 못하고,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덜 똑똑했다(p. 229).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 책은 미국의 3개 지역에서 1개월씩 식당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판매 직원 등 비숙련 노동자가 되어 그 임금으로 생활이 가능한지 실험해 본 경험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실험의 목표는 ‘진짜 가난한 사람들이 수입과 지출을 맞출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실험의 과정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하고 있지만, 당초 실험의 목표 혹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묻는다면 필자는 ‘실패’ 혹은 ‘No’ 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부양가족이 없었고, 실험기간 동안 다치거나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된 경우는 없었으며, 어떤 지역은 비수기여서 집세의 부담이 적었다. 그럼에도 수입이 지출을 간신히 맞출 수 있거나 혹은 수입과 지출을 맞추기 어려웠다면, 실제 생활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만으로는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1장의 제목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든다’는 간명하게 이 사실을 대변한다. “가난한 사람들만 아는 절약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했다.” 집을 구할 때 보증금이 없으니 더 비싼 방세를 치러야하고, 가전이나 주방기구가 없는 방에서 살다보면 음식을 많이 해서 냉동해 놓고 먹는 등 식비를 줄이기 어렵다. 의료보험을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검진을 받을 수 없고 아프거나 다치면 더 비싼 값을 주고 약을 사게 되며, 아프거나 다쳤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없어질 수도 있다(p.47~48). 때로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이 있을수도 있지만, 그러한 정보를 수집하고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기 위해서는, 직장을 옮기는 동안 급여가 없어질 수 있고(p.161), 일자리를 알아보러 가기 위한 이동이나 아이를 맡기는 등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p.187), 일자리를 구하거나 더 나은 조건의 새 일자리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근면한 빈민을 도와주는 곳이 있긴 있었지만, 빈민 스스로가 그곳을 찾겠다는 마음이 아주 확고해야 하고 또 너무 가난하지 않아야 찾을 수 있었다(p. 143),”
이렇듯 저자가 본 ‘워킹푸어’들은 일 하고 있지만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들고 저축은 생각하기 어렵다. 매달 정해진 것에 비해 예상할 수 없는 지출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제적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럴 것으로 기대되는 ‘일자리’의 선택에 있어, 여러 생활상의 여건은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하는 것을 쉽지 않게 한다. 공공 혹은 민간 지원체계가 있지만, 관련된 조언과 정보를 얻는 것에 취약하기 쉽고, 때로는 시간이나 이동의 문제로 지원체계를 찾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저자는 이 실험을 통해 자신이 빈곤을 경험하거나 장기간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는 기분을 진짜 ‘느낄’ 수 없다고 얘기하며, 빈곤은 관광 목적으로 체험해 볼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책을 읽는 상당수의 독자들도 실제의 빈곤을 체험했거나, 일하면서도 빈곤한 삶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일지 모른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상황을 조금 엿보고,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고, 문제의식을 느끼고, 혹은 필자처럼 부끄러움을 느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일자리가 많아지고 그들이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도 있을텐데?', '왜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은거지?' 라고 너무 쉽게 생각해 왔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느껴 마땅한 감정은 수치심이다.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면서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p.296).” 라고.
'함께하는공부 > 함께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정폭력』-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되는 폭력 이야기 (0) | 2020.11.18 |
---|---|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0) | 2020.10.10 |
『지식인의 책무』 (0) | 2019.08.31 |
『청년 흙밥 보고서』 (0) | 2019.07.31 |
『위장환경주의』 - ‘그린’으로 포장한 기업의 실체 (0) | 2019.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