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복지, 두 영역의 필요가 사회적 농업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다
작성자| 조미형
농업 부문에서는 농산물 생산만으로 소득보장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농산물 생산 이외 체험 관광, 자연경관 서비스 등 농업이 아닌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활동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 부문에서는 돌봄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에 대한 부담과 함께 탈시설화를 통한 사회적 돌봄에 대한 요구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08년 유럽연합에서 사회적 농업 지원 정책을 모색하려는 취지로 연구를 수행하였고, 2014년 식량농업기구(FAO)의 ‘먹거리 보장 및 영양에 관한 글로벌 포럼’에서 사회적 농업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유럽연합은 사회적 농업을 농촌지역의 사회 통합과 농가의 다중경제활동과 관련한 주제 의제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정운영5개년 계획」에서 국정과제 81번 “누구나 살고 싶은 복지 농산어촌 조성”의 세부 내용으로 -‘18년 사회적 농업 시범사업 실시 및 관련 법적 근거 마련 추진- 포함되었다. 여기에서 사회적 농업 시범사업은 ‘취약계층 대상 영농 활동과 연계하여 건강·교육 등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농장 육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2018년 9개소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하였고, 12월 ‘사회적 농업 육성법’ 제정안이 발의되었다. 2019년에는 시범사업을 18개소로 확대하였다.
사회적 농업이라는 용어는 이탈리아의 사회적 협동조합 모델이 농촌으로 확산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탈리아 농촌 지역에는 농·축산업에 참여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 2000년 300개가 되지 않았으나, 2005년 571개로 5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유럽 전역에 걸쳐 확산된 일종의 운동이었다. 현존하는 다양한 실천에서 드러나는 공통 경향을 표현하기 위해 ‘사회적 농업’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이 때 공통 경향은 ‘사회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농업 활동’을 뜻하지만, 사회적 농업이라는 개념은 현실적 여건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정의에 따라 특정 유형의 실천을 선택하거나 배제할 수 있다. 연구자들마다 사회적 농업 실천 영역을 조금씩 다르게 설정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사회적’이라는 말은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는 이들의 통합(inclusion)을 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Iacobo(2009: 11)의 개념 “사회적 농업은 급여를 받는 노동을 수행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가령 지적‧신체적 장애인, 재소자, 약물중독자, 소수자, 이주민 등)의 통합을 지향하거나, 불리한 여건에 있는 사람들의 재활‧교육‧돌봄을 촉진하거나, 아동 및 노인 등 특정 집단에게 농촌 지역에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목적을 지닌 농업 실천”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적 농업은 “사회적으로 배제된(excluded) 이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안는 농업 실천”이라는 넓은 개념적 정의 하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농업에 대한 관심에 비해 국내 연구는 외국 정책이나 사례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수준에 그치며, 사회적 농업 담론과 실천은 이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제도와 정책으로 설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농업을 어떻게 정의할지 범위와 대상, 목표 등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아직도 존재한다.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사회적 농업’이라는 용어 자체도 낯설고 어색할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이 단어에서 ‘사회적’을 사회복지에서 ‘사회’가 의미하는 바와 견주어 생각해 본다면, 사회적 농업은 사회복지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사회적(social)’이라는 단어는 사회 내에서의 인간들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이 관계를 통해 인간의 생활이 영위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핵심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사회적 일자리 등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붙으면서 정책이나 사업 대상이 취약계층으로 한정되는 과정에서, ‘사회’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인 공동체적 노력, 사회 공동의 책임, 주체로서의 삶 강화, 연대 등이 놓쳐질 수 있다. 사회복지를 시혜적·선별적인 관점의 협소한 의미로 보는 것처럼, 사회적 농업을 농업이라는 매체를 활용하여 취약계층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천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적 농업 또한 사회통합(social inclusion)을 지향하는 실천이다. 재활이나 치료가 아닌 사회통합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한 마을에서 어울려 같이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농업의 본질은 도움과 치료가 목적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사람을 조금씩 돕고 품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활기업이나 사회적 기업이 농업을 수단 삼아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사회복지시설인 교남어유지동산(경기 파주)이 있으며, 사회복지시설이 아닌 농장으로 행복농장(충남 홍성군 장곡면)이 있다.
* 「행복농장」 사례 속에서 사회복지가 어떻게 결합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행복농장은 만성정신질환자에 대한 돌봄을 실천하고 있는 농장이다. 단순한 일회성 치유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설에 거주하는 정신장애인이 농장에서 어떻게 하루를 보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시설을 나와 농장에 와서 생활한다는 것은 단지 농업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이 아니라, 농장이 있는 농촌 사회, 마을에서 산다는 의미이다. 사회복귀이고, 지역사회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시설의 장애인 돌봄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농장과 마을이 절감하고 분담하고 있다. 하지만, 농장 입장에서 보면 돌봄 활동으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과 함께 지내기 위한 환경 조성과 적당한 일거리를 고민해야 하며, 일의 방식과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돌봄 영역이 강화될수록 생산성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4년부터 자연구시라는 이름으로 충남 지역의 만성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다. 자연구시 과정은 충남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이하, 센터)에서 장곡면 소재 농장에 정신장애인 프로그램을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기초과정으로 센터에서 대상자를 모집해서 4박 5일 동안 마을 숙소에서 머물며 행복농장에서 농작업을 체험한다. 이 과정을 거친 사람 중 서너명을 선발해서 2~3주 동안 더 일상적으로 농장 생활을 경험하는 심화과정을 진행하고, 그 중 인턴을 고용한다. 이 과정을 통해 현재는 정신장애인 2명이 요양시설로부터 나와서 홍성읍 소재 아프트에 거주하면서 행복농장 및 오누이권역센터로 출퇴근하면서 재직 중이다. 인건비의 일부를 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농장과 센터는 근본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서로 동의했지만 2~3년 동안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행복농장 설립 당시, 센터 측에서는 시설하우스 등 생산 기반을 마련해 주고 사회복지사 1명을 장애인 5명 정도 배치하면 농장이 운영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때 농장에서 이런 방식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였다.
하나는 현실적으로 농사 초보, 일하고 배우는데 어려움을 가진 장애인 5명이 농사지어서 수익을 발생시켜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장애인들끼리 모아 놓으면 시설이나 병원을 농장으로 장소를 이동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진정 사회복귀라고 할 수 있냐는 문제 제기를 했다.
그래서 행복농장의 법인 운영을 주장했고, 2016년 ‘협동조합 행복농장’으로 독립하고 센터장이 이사장을 맡았다. 실제 행복농장에서는 비장애인 3명에 장애인 2명이 결합하면서 초기에는 어렵겠지만 일정하게 생산성을 올리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목표를 세웠다. 센터가 장애인을 돌보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농장이 모든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에게 농장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농장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정신질환자들의 사회복귀가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여전히 농장은 농업 생산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농가 규모와 비슷하게 천 평 정도의 시설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토지는 임대하고 있다. 돌봄 농업을 실천하는 휴게시설이나 정원 등을 만들 규모는 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마을이 등장해야 한다. 지역에 있는 다양한 자원이나 공간이 농장과 함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구시 프로그램은 센터의 결합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센터에서 참여자를 모집하고 선정하고, 농작업 외 생활, 상담 부분을 담당한다. 농장과 주변 농가에서는 농작업 교육이나 행사에 참여한다. 인턴 과정에서는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일정 기간 60~80% 인건비를 지원한다. 농장 입장에서는 20~40%의 인건비를 부담하기에도 만만치 않다. 시설에서 나와 독립생활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약물, 건강관리 등 생활에 대한 돌봄까지 농장에서 담당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참고문헌>
김정섭 외(2017). “사회적 농업의 실태와 중장기 정책 방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 외(2017). “한국의 농업 현실과 사회적 농업”. 2017년 월례세미나 자료집. 마을학회 일소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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