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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함께하는연구
2020. 10. 10. 08:24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홍기빈 저, 지식의 날개, 2012년)
작성자 | 이승영
한줄 요약:
저자 홍기빈은 저서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에서 현대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돈벌이 경제학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으며, 이것의 한계가 무엇인지, 이에 대해 저항한 경제학적 접근은 어떤 것이었는지 밝히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살림/살이 경제학은 어떤 것인지 밝히고 있다.
오늘날 '경제학'은 어떤 학문인가? 현대의 경제학은 인류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저자는 오늘날의 경제학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돈벌이 경제학'에만 치우쳐 있음을 지적하며, 여기서 벗어나 인간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고 인간답게 해 주기 위한 고민이 담긴 '살림/살이 경제학'을 발전시켜 나갈 것을 주장한다.
'살림살이'라는 단어는 남을 살리고 또 자신도 살아야 하는 행위, 즉 '함께 산다'는 의미가 하나의 용어로 표현된 단어로,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한 단어로 생각하는 남을 살리고 자신도 살리는, 다 함께 사는 의미를 독자들에게 되새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살림/살이'로 구분하여 표기하고 있다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경제학'의 어원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에서는 현대 경제학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저자는 먼저 고대 경제학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경제학의 어원을 탐구하며 과거의 경제학은 어떠한 학문인지를 밝히고 있다. 흥미롭게도 '경제학(Economics)'이라는 용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가정관리(오이코노미아)'라는 말로, 가정살림에 있어서 윤리적 도덕적 문제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경제학은 살림살이에 대한 것이었으며, ‘부를 생성하기 위한 경제학’도 별개의 경제학으로 존재했다.
중상주의자들이 출현했던 초기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학 혹은 경제 사상은 분명코 살림살이 경제학 혹은 경제사상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과 집단이라는 인간의 살림/살이를 인간의 경제라고 이해하여 "살림/살이를 어떻게 펼쳐내야 할까"라는 윤리적, 도덕철학적 문제의 틀에서 논의된 것이다(57쪽).
그리하여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오이코노미아’ 에서는 '왜 주인은 노예의 좋은 벗이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으며, 당시 아테네에서도 '모두들 돈에 눈이 멀어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수단인지 잊어버렸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64-65쪽).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경제사와 사회경제 문제에도 적용되는 듯하다(64-65쪽).
돈벌이 경제학의 대두
저자 홍기빈은 이어서 돈벌이 경제학이 대두되게 된 과정을 간략하면서도 소상히 밝히고 있다. 먼저, 별개의 경제학으로 존재했던 살림살이 경제학과 돈벌이 경제학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중농주의를 거치며 하나의 ‘자연’ 체계 안에서 그 둘이 함께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두 개의 경제학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가 바로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아담 스미스이다. 아담 스미스는 살림살이와 돈벌이 경제학 모두를 보다 포괄적으로 논의하면서 현대 경제학의 틀을 세웠으며, 아담 스미스를 비판하며 등장한 리카도가 모든 것에 ‘가치’, ‘가격’의 개념을 적용하면서 현대의 화폐 경제학의 체계가 확립되었다. 그 결과 별개의 경제학으로 존재했던 살림살이 경제학은 화폐 중심의 경제학에 부속되는 일부분처럼 다뤄지게 되었다. 또한, 이렇게 수립된 돈벌이 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마르크스의 경제학마저 기존의 돈벌이 경제학의 체계와 논리를 오히려 강화하고 공고하게 해 주는 작용을 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경제사를 읽노라면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살림/살이 경제학을 외치며
4장에서 저자는 살림/살이 경제학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기본 원리들을 제시한다.
돈벌이 경제학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삼는다면, 살림/살이 경제는 '좋은 삶'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147쪽). 좋은 삶이란, '인간 존재의 범위가 어디까지이며 그 안에 담긴 궁극적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삶의 물질적, 정신적, 미학적, 도덕적 측면까지를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정의 내려지는 것, ... 자신이 소중히 할 수 있는 도덕적 가치까지 풍부하게 실현되는' 그런 삶을 말한다(147쪽).
또한 목적과 수단 관계를 분명하게 하고, '인간 존재의 전면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인간 존재의 전면적 발전'은 저자가 주장하는 살림/살이 경제학의 핵심원리로, 다음 대목을 보면 저자가 주장하는 살림/살이 경제학이 무엇인지, 그것을 제창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살림/살이 경제(학)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원리는 '인간 존재의 전면적 발전'이다. 이는 단지 돈벌이 경제가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케케묵은 도덕적 '비판'의 차원에 머무는 부정적인 원리도 아니며, 또 '욕망에 대한 부정'이라는 소극적 원리도 아니다. 이는 사람을 쾌락과 고통의 계산기이자 선택자로 상정하는 돈벌이 경제의 인간관과 단절한다. 대신 스스로의 존재 안에서 스스로의 삶의 의미와 활동의 목적과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활동하는 능동적인 존재, 즉 삶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그(녀)에게 있어서 경제의 문제, 즉 살림/살이의 문제는 '어떻게 수단을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더 확장하고 발전시킬 것인가가 된다(165쪽).
종합하자면, 좋은 삶, 인간 존재의 전면적 발전을 추구하는 삶이 우리의 경제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 욕망의 포트폴리오를 재설계함으로써 우리 또한 화폐적 자산축적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도록 하라는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4장의 내용에서는 일부 아쉬운 점들도 발견된다. 먼저, 4장에서 제시되는 내용들은 살림/살이 경제학의 원리로, 개인적 차원에서의 접근에 치우쳐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기본적 원리에 대한 논의의 중요성은 충분하지만, 기본적 원리를 넘어서서 현대적 맥락에서 살림살이 경제학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 어떠한 틀로 만들어져야 할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사회적 차원, 조직적 차원에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 지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또한, 보다 세부적인 부분에서, 현대인들이 살림살이 경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현대에는 결혼이 '등가교환'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과연 결혼이 등가교환의 의미를 지니지 않았던 시대가 있는지 의문을 던지게 된다. 무엇이 가격으로 매겨지고, 무엇을 교환하였는지 그 내용만 다를 뿐, 사랑 순도 100%로 이루어진 결혼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각 개인들의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을 촉구하지만, 이 또한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 되지 않는 상황에서 현 세대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그에 대한 고민에 매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살림/살이 경제에 대한 고민을 미루는 것은 우리의 인간다움을 피폐하게 하는 돈벌이 경제를 보다 공고하게 해 줄 뿐이니,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 끊어야 할까.
이 책은 돈벌이 경제학에만 매몰되어 있는 오늘날의 경제학과 완전히 단절하고 좋은 삶, 인간다운 삶, 함께 사는 삶, 인간간 존재의 전면적 발전을 추구하는 삶으로서의 살림/살이 경제학으로의 전환을 외치는 경제사로, 기존의 '돈벌이 경제학'의 틀 안에서 작성된 기존의 경제사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는 경제학을 공부한 이에게는 새로운 접근을, 경제학에 무지한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경제사 이야기를 제공해준다. 저자의 주장과 논의도 흥미롭지만, 논의를 풀어가는 중에 저자가 제시하는 풍부한 사료와 풍성한 관련문헌들을 책의 깊이를 더해주고 저자의 학문적 열정과 깊이에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어려운 내용을 짧게, 쉽게 풀어내고자 함에 있어서 독자들에게 충분히 친절하지 못한 부분들이 다소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경제사에서 다뤄지지 않는 새로운 접근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안적 경제학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지속가능한 경제, 사회적 경제, 인간다운 삶, 더불어 사는 삶에 도움이 되는 경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홍기빈의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를 일독할 것을 권한다.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
아마르티아 센의 대표적 저술, '불평등의 재검토' (아마르티아 센 저술, 한울아카데미)
센의 경제사상에 대한 입문서로 저자가 추천하는 '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 (아마르티아 센 저술, 원용찬 옮김, 갈라파고스, 2008)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홍기빈 저술, 2001년 책세상 혹은 2020년 리커버 개정판)
함께하는연구에서는 매월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 '함께읽기'를 진행합니다. '함께읽기'는 함께 읽은 도서에 관한 서평을 싣는 공간입니다. 2020년 9월 22일에는 9월의 도서, 홍기빈의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관글: 2020년 함께읽기 도서 목록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