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미쉘 자우너의『H-마트에서 울다』
작성자 | 황선영
이번 달 함께하는연구 조합원들이 함께 읽은 책은 「H-마트에서 울다」입니다. 「H-마트에서 울다」는 Japanese Breakfast라는 밴드의 보컬을 맡고 있기도 한 미쉘 정미 자우너(Michelle Chongmi Zauner)가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통해서 어머니와의 기억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미쉘 자우너의 중간 이름(middle name)인 정미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책은 아마존, 뉴욕타임스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고, 29주 동안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머물렀습니다. 버락 오바마의 전 미 대통령이 추천한 책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책의 어떤 부분이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그린 자전적 에세이에 공감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자신의 어머니(혹은 어머니의 상을 갖고 있는 양육자)를 향한 약간의 미움과 아픔이 믹스된 그리움과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미쉘의 어머니는 취업으로 인해 한국으로 온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일본과 독일을 거쳐 미국에 정착하게 됩니다. 미쉘의 어머니는 미국에서 미쉘을 양육하지만, H-마트와 같은 한국 식품을 파는 슈퍼마켓에서 재료를 구입해서 손수 조리한 갈비, 총각김치, 된장찌개, 불고기 등 한국 전통음식들을 만들어 미쉘에게 먹입니다. 미쉘의 어머니는 미국인인 친구나 남자친구 어머니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미쉘이 바라는 어머니의 상(mommy mom)과는 거리가 먼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미쉘이 넘어져서 다쳤을 때 미쉘은 어머니가 당장 달려와 안고 얼러 주기를 바라지만 미쉘의 어머니는 놀라면서 미쉘을 야단치거나 좀 더 조심을 했어야 한다고 주의를 줍니다. 미쉘의 친구 어머니와는 달리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어머니는 본인과 딸의 외모에 상당히 관심이 많아서 딸의 옷매무새나 피부 상태를 체크하고 이리저리 통제를 합니다.
미쉘은 혹독한 사춘기 과정을 거치면서 여타의 사춘기 소녀가 그러하듯 뮤지션이 되고 싶어 하는 꿈을 마땅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는 어머니와 자주 부딪히게 되고 타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며 어머니의 곁을 떠납니다. 어머니는 떠난 딸을 위해 한 달에 한번 씩 딸이 좋아할만한 한국음식들, 과자, 화장품, 옷가지 등을 한아름 챙겨서 소포로 보내죠. 특히 미쉘은 어머니가 보내주었던 구두를 추억합니다. 딸이 새 구두를 신고 발이 아플까 한 달 정도 새 구두를 신고 길을 들여서 보낸 그 구두를 떠올리며 어머니의 사랑을 추억합니다. 그런 어머니가 암을 진단 받게 되고 항암을 몇 차례 시도했지만 차도가 없자 어머니는 항암을 포기하고 투병을 시작하고 미쉘은 그런 어머니의 간병을 시작합니다. 아픈 어머니가 생의 끈을 잡게 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사귀어온 연인과 결혼식도 올립니다. 그러나 그런 미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미쉘이 자란 집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미쉘은 어머니의 투병 중과 투병 후에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만들어보며 어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그 기억을 통해 어머니를 이해하고 서서히 어머니와 화해의 과정을 밟습니다.
내가 아닌 타인과 나누는 모든 사랑에는 약간의 미움과 아픔을 동반하기 마련이죠. 그건 인간이 기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고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방식과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랑의 방식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아픔과 미움으로 인해 사랑이 희석된다면 그 사이가 긴밀할수록 그 미움과 아픔을 풀어내는 작업들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매개로 그 작업들이 일어납니다. 보편의 사랑과 보편의 음식. 그것이 이 책이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열쇠가 아닌가 싶습니다.